자동화 이야기 - 보이지 않게 옮겨간 노동

자동화 이야기 - 보이지 않게 옮겨간 노동

오늘은 ‘노동의 자동화’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일본 편의점의 '자동화', 그리고 로봇 뒤의 사람들 🤖

#로봇 #자동화 #원격조종 #보이지_않는_노동 #오프쇼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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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쇼어링(Offshoring) : 기업이 생산, 제조, 서비스 등 특정 업무나 프로세스를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의 저비용 국가로 이전하는 것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의 편의점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로봇 도입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패밀리마트(FamilyMart)와 로손(Lawson)은 2022년부터 텔렉시스턴스(Telexistence)가 개발한 로봇을 약 300개 매장에 도입했습니다. 이 로봇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진열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AI 시스템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합니다.

세븐일레븐 재팬(Seven-Eleven Japan) 역시 텔렉시스턴스와 협력해 생성형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입니다. 복잡한 과업까지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2029년 매장 도입이 예정돼 있습니다.

일본 편의점에서 로봇이 음료를 꺼내 운반하고 있다.

편의점 기업들은 로봇 도입을 통해 인력난을 해소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며,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하죠.

하지만 기업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사실도 있습니다. 로봇은 아직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오작동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현재 일본 패밀리마트와 로손에 도입된 로봇의 경우, 실제로 약 4% 확률로 오류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없는 매장에서 로봇이 음료를 운반하다 떨어뜨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수습하는 주체는 일본 현장 직원이 아닙니다.

그 역할은 필리핀의 스타트업 ‘아스트로 로보틱스(Astro Robotics)’에서 일하는 원격 조종 노동자들이 맡고 있습니다.

일본 편의점 진열대를 채우는 로봇은 필리핀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격으로 모니터링합니다.

VR 헤드셋을 착용한 필리핀의 젊은 IT 노동자들은 24시간 일본 편의점 로봇을 모니터링하며, 문제가 생기면 원격으로 로봇을 조작해 상황을 해결합니다. 로봇이 떨어뜨린 음료를 다시 집게 하고, 작업을 이어가게 만드는 식입니다.

즉 일본 편의점 업계는 매장을 ‘완전히 자동화’한 것이 아니라, 자동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노동을 해외로 이전한 셈입니다.

새로운 일자리는 일본이 아니라 해외 개발도상국에 생겨났고, 그 일자리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낮습니다.

실제로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리뷰에 따르면, 필리핀 아스트로 로보틱스의 원격 조종사(teleoperator)들은 최소한의 급여(월 250~315달러 수준)를 받으며, 복지 혜택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컴퓨터공학 전공자라는 점은 이 자동화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더욱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일본 편의점의 자동화는 노동을 없앤 것이 아니라, 국경 너머로 옮겨 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이른바 오프쇼어링입니다.

자동화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식, 미국의 콜센터 보호법 발의📞

#콜센터 #자동화 #아웃소싱 #일자리

자동화와 오프쇼어링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도입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콜센터의 자동화와 해외 이전이 확산되자, 이를 견제하려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미국 내 콜센터 및 고객센터 종사자는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을 비롯한 여러 기관은 2030년대 초까지 자동화·AI 도입과 오프쇼어링으로 미국 내 콜센터 일자리가 최대 15만 개까지 사라질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자동화에 적극적이지만, 소비자 여론은 다릅니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약 70%가 “자동응답 시스템보다 사람과의 통화를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고객센터의 자동응답이나 AI 상담사와 씨름하는 불편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가 봅니다. 33레터 지난호에서도 콜센터 AI 도입에 대해 다루면서 이 점을 짚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콜센터 종사자들의 우려와 소비자들의 여론을 반영한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 민주당의 루벤 갈레고 의원과 공화당의 짐 저스티스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한 콜센터 해외유출 방지법(Keep Call Centers in America Act of 2025, 미 상원 법안번호 S.2495)이에요.

미국 통신노조 홈페이지에 ‘콜센터 해외유출 방지법’을 지지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올라와 있는 이미지. 출처: cwa-union.org

콜센터를 해외로 이전한 기업을 공개하고,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보조금·대출보증)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입니다. 여기에는 소비자가 상담을 받을 때, 상대가 AI인지 사람인지, 상담 인력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를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콜센터의 오프쇼어링을 억제하고 미국 내 일자리를 보호하자는 거죠. 현재 이 법안은 상하원의 소관 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자동화를 기술 발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일자리와 소비자 권리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사례입니다.

💭the삶의 생각

  •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정치학』에서 ‘베틀 북이 스스로 움직이고 현악기가 저절로 연주된다면, 주인에게는 더 이상 노예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동의 자동화에 대한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 기술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는 주장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동화는 글로벌 공급망과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릅니다.
  • 자동화가 오프쇼어링과 함께 진행될 경우, 일자리는 국경을 넘어 이동합니다. 적절한 규제와 사회적 개입이 없다면, 한쪽에서는 ‘완전 자동화’를 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기계를 뒷수습하는 저임금 노동만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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