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배송’은 공짜가 아니다 - 그 비용은 누가 내고 있을까
구독자님은 어떤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시나요? 에디터 J는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만 두 가지를 이용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는 전날 밤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받을 수 있으니 정말 빠르죠.
소비자들이 '속도'에 중독되는 시대라고 합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생필품, 화장품, 가전제품까지도 몇 시간 안에 문앞에 도착하니까요. 아직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소비자들이 빠른 배송의 편리함과 즉각적 만족에 길들여지면 배송의 표준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문제는 그 속도를 지탱하는 노동자들이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은 글로벌 사례를 통해 ‘빠른 배송’이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미국 - 30분 배송 시작하는 아마존
아마존 효과(Amazon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아마존이 만든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이 유통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모든 소매업체가 생존을 위해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2005년 아마존은 ‘프라임 멤버십’을 통해 이틀배송(two-day delivery)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처럼 넓은 땅에서 이틀배송은 획기적인 변화였죠. 그때부터 아마존의 충성 고객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한동안 이틀배송은 온라인 쇼핑의 표준이 됩니다.
그리고 2019년, 아마존은 당일배송(same-day delivery) 서비스를 전격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송 인프라를 구축하고, 창고를 확장하고,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기에 가능했죠.
경쟁사들 역시 밀려나지 않으려면 아마존을 따라가야만 했어요. 곧 월마트와 타깃 같은 기업들도 배송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기업들이 당일배송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12월. 아마존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필라델피아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아마존 나우(Amazon Now)’라는 30분 배송 시범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아마존 나우란 아마존이 자체 운영하는 퀵커머스(한국의 배민 B마트와 유사) 서비스인데요. 고객이 신선식품, 생필품, 화장품, 가전제품 등을 주문하면 도심지의 마이크로 풀필먼트센터에서 빠르게 배송하는 거죠. (아마존은 인도와 UAE에서 아마존 나우 서비스를 먼저 도입, 시험한 후에 미국으로 확장했습니다.)
문제는 속도 경쟁의 압박이 고스란히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는 거죠.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노동자들이 바코드 스캐너와 모바일 기기로 실시간 작업 속도를 추적당하며, 시간당 물품 개수(rate)를 맞추지 못하면 경고를 받습니다. 경고는 해고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일해요. 아마존 배송 노동자들 역시 알고리즘으로 동선을 세세하게 통제당하며 물량 압박을 받습니다.
중국 - “20분 늦으면 공짜” 치킨게임이 벌어지다
오늘날 중국 대도시 소비자들은 과일, 전자제품 등 원하는 것은 뭐든지 1시간 내에 집앞으로 받을 수 있어요. 알리바바(Alibaba), 메이퇀(Meituan), 징둥닷컴(JD.com)이 빠른배송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음식배달을 하던 메이투안은 2023년부터 “모든 것을 집 앞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신선식품, 의약품, 생활용품 배달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메이퇀이 독주했지만, 곧 알리바바가 ‘타오바오 인스턴트 커머스’라는 서비스로 반격에 나섰죠. 음식, 옷, 전자제품, 꽃 등 다양한 상품을 60분 이내 배송했어요. 올해 4월에는 징둥닷컴도 “20분 늦으면 무료”라는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시작했습니다.
2025년 10월까지 세 업체가 판촉비로만 1,000억 위안(약 20조 원) 이상을 투입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졌습니다. 배송비는 물론 음식값까지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이 난무했는데, 나중에는 소비자가 버블티 한 잔을 주문하면 거의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소비자에게 깎아준 금액을 판매자(음식점)에게 전가해서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죠.

기업의 출혈 경쟁이 심해지고 판매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중국 당국(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개입했습니다.
- 온라인 플랫폼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출혈경쟁 자제 요청
- 10월 중순부터 가격 자율성, 가격 투명성, 알고리즘 공정성 등의 내용을 담은 새로운 공정경쟁법 시행
10월 규제 이후, 중국 플랫폼들의 출혈 경쟁은 일단 잦아들었습니다. 플랫폼이 판매자(음식점)에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도 금지되었고요. 그러나 플랫폼 노동 측면의 전면적인 규제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인도 - 15분 배달, 10분 배달… 인간 배달?
도심 인구밀도가 높고 실업자도 많은 나라, 인도의 퀵커머스도 대단합니다. 식료품, 패션, 전자제품까지 10분~30분 만에 고객의 문 앞에 배달됩니다. 블링킷(Blinkit), 조마토(Zomato), 스위기 인스타마트(Swiggy Instamart), 젭토(Zepto) 같은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배송도 점점 빨라지는 추세고요.
조마토는 15분 음식 배달로 시장을 뒤흔들었고, 플립카트(Flipkart)의 ‘미닛’ 서비스는 14개 도시에서 운영 중입니다. 인도에서 아마존은 10분 배달 서비스 ‘아마존 나우’의 서비스 가능 지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상품을 주문해서 10~15분 만에 받는 것도 신기한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올해 초 인도에는 ‘15분 인간 배달’이 등장했어요😨
어번 컴퍼니(Urban Company)라는 회사에서 ‘인스타 메이드(Insta Maid)’ 서비스를 새로 출시한 겁니다. 소비자는 앱을 통해 시간당 49루피를 지불하고 바닥 쓸기·걸레질·집안 정리 등의 가사노동을 해줄 사람을 부릅니다. 그러면 15분 내로 가사도우미가 집에 도착한다는 거죠.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도 턱없이 낮은데 최대 25%의 '수수료'까지 뜯어가는 전형적인 플랫폼 모델입니다.)
가사 노동자 단체와 활동가들은 이를 “사람을 인스턴트 라면처럼 취급하는 일회용 노동”이자 “현대판 노예제”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논란 끝에 ‘인스타 메이드’는 ‘인스타 헬프(Insta Help)’로 이름을 변경했지만 서비스 자체는 동일하죠. 이 사례는 규제 없는 환경에서 빠른배송 경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인도에서는 퀵커머스 라이더의 안전 문제도 제기됩니다. 소비자들이 10분 배달의 편리함을 누리는 동안, 그 속도를 유지하는 플랫폼 노동자(라이더)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으니까요🏍️이들은 배달이 늦으면 플랫폼 평점이 떨어지거나, 인센티브가 삭감되거나, 심지어 아이디가 차단될까 봐 위험한 운전을 감행합니다.

인도 의회 의원 라가브 차다는 퀵커머스 기업들의 10분 배달 서비스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잔인한(cruel) 성격”을 지녔다면서 그런 배송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봇이 아닙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남편이고, 형이고, 아들입니다. 의회는 그들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10분 배송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 인도 의회 의원 라가브 차다
이 사례들은 서로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적절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배송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부담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축적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속도 경쟁은 멈추지 않고 더욱 심화됩니다. 소비자의 편의성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기 위해, 정치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의 퀵커머스 시장에서도 주문 후 1시간 이내 배송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 B마트가 선두에 서 있고, 네이버는 ‘지금배송’이라는 이름으로 GS25와 CU의 상품을 신속하게 배송합니다. 2025년 퀵커머스 시장 규모는 약 5조 원.
한국에는 플랫폼을 따로 규제하는 법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온라인플랫폼법, 공정화법 등이 거론되고 있어요.
💬 the삶의 생각
장볼 시간 없는 사회
새벽배송이나 퀵커머스 장보기가 보편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 전체에 장시간 노동과 시간 빈곤이 만연하기 때문이죠. 낮이나 이른 저녁 시간에 장보기가 불가능한 노동 형태와 생활, 과연 최선일까요?
무엇이 더 시급한가?
원래 마트 배송으로 주문 3시간 만에 식료품을 받던 소비자가 퀵커머스로 30분 만에 받게 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혁신일까요? 아니면 기업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만들어진 수요’일까요?
사회적으로 본다면 대도시 소비자가 상품을 빠르게 받는 것보다 식품 사막화 지역 소비자의 장보기가 쉬워지는 것이 더 시급한 일입니다. 자본이 하지 않는 이런 고민도, 누군가는 해야겠죠.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인도의 퀵커머스 배달 라이더들은 하루 12~16시간 일한다고 합니다. 시간 날 때 잠깐씩 일하는 긱 워커(gig worker)가 아니라 전업 노동자인 거죠. 그러나 사회안전망도 없고 아플 때 유급휴가를 쓰지도 못하고 노동자로서 보호받지도 못합니다. 이런 노동자들을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선 안 됩니다.
불안정 노동자가 많을수록…
실업자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플랫폼들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쉽게 쓰면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사회 전반의 일자리 양과 질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