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택시 뒤에도 필리핀 노동자가?!

로보택시 뒤에도 필리핀 노동자가?!

지난 4일, 미국 의회 상원에서는 상업·과학·교통위원회 청문회가 열렸어요. 지난해 웨이모(Waymo)의 로보택시가 스쿨존에서 등교 중이었던 어린이를 다치게 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웨이모의 최고안전책임자(CSO) 모리시오 페냐(Dr. Mauricio E. Peña) 박사가 청문회에 출석했는데, 질의 과정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웨이모의 자율주행 택시 운행을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웨이모 로보택시 출처: 웨이모 홈페이지

페냐 박사는 로보택시가 특수한 상황에서는 미국 및 해외에 위치한 즉시대응팀(fleet response agent)의 도움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량의 센서와 소프트웨어, 사전학습된 모델로 현실에 대처하기가 불가능할 때 인간이 개입해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거죠. 상원의원들이 질문을 거듭하자, 페냐 박사는 즉시대응팀의 해외 소재지가 필리핀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일본 편의점 사례가 생각나시죠? 다른 점은 있습니다. 웨이모측에 따르면 즉시대응팀은 가상의 운전대를 돌리며 직접 차를 원격조종하지 않습니다.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지도 않습니다. 대신 인간 노동자는 AI가 판단을 못할 때 지도에 새로운 경로를 그려주거나, ‘지금 이러이러한 조작이 안전하다’고 알려줍니다. 인간의 인풋을 따를지 거절할지는 소프트웨어가 판단한다고 해요.

그동안 웨이모가 즉시대응팀의 존재를 비밀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2024년 5월 자체 블로그 포스트에서 즉시대응팀의 존재를 밝히면서 로보택시가 ‘전화찬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표현했지요.

다만 웨이모는 이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테크 기업들은 기술을 ‘완전한 자동화’로 포장하기를 선호하거든요. 대중의 관심을 받고 투자금을 모으려면 그게 유리하니까요.

업계 선두주자를 자처하는 웨이모는 현재 미국의 6개 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 중이고, 미국 내 5개 도시와 영국 런던에서 신규 운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매주 5만 회의 “완전 자율주행” 운행을 한다고 홍보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미국인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이 웨이모 택시 운행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피닉스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은 원격 노동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상원의원 에드 마키(Ed Markey)는 웨이모가 해외의 원격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안전 우려와 사이버보안 리스크를 지적했어요. 미국과 필리핀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정보 전달이 지연될 수도 있고, 사이버공격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거죠.

마키 의원은 일자리 오프쇼어링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기업이 택시를 대체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자리를 전부 해외로 옮기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웨이모가 필리핀에 아웃소싱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와 구조적인 이유가 둘 다 작용합니다. 예측불가능한 시나리오에 신속하게 반응하도록 훈련된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한데, 필리핀에는 영어에 능통한 인력이 풍부하고 미국의 테크 기업들을 지원한 경험이 많아요. 또 즉시대응팀을 24시간 가동하는 비용은 필리핀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때가 미국에서 고용할 때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자율주행차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자율’의 실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AI는 다양하고 복잡한 대도시의 맥락에 약합니다. 검은 비닐봉지가 날아다니는데 로보택시의 라이다는 그것을 돌멩이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경찰관이 손짓을 하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이럴 때 마닐라나 세부에 위치한 인간 노동자가 그 차의 경로에 대한 판단을 한다면, 인간의 판단도 주행 시스템의 일부가 됩니다.

웨이모는 ‘6세대 웨이모 드라이버’를 통해 ‘완전 자율주행(fully autonomous)’ 운영을 시작했다고 홍보합니다. 과연 승객들에게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출처: 웨이모 홈페이지

로보택시가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많이 운행될수록 특수한 상황도 많이 발생할 것이고, 인간의 지원도 더 많이 필요할 겁니다. 적어도 당분간은요. 그렇다면 ‘자율’이란 인간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 노동력이 활용되는 방식과 장소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주화와 오프쇼어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인간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AI 경제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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