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 자동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마존의 물류센터를 보면, 자동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노동자를 전면적으로 대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과 나눈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동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환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요즘 유통업계에 자동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물류창고에 로봇을 도입한 미국 아마존은 그 선두에 서 있는 기업 중 하나고요. 물류창고의 자동화는 기술의 발달에 따른 당연한 변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입니다. 오늘 33레터에서는 아마존 물류창고 자동화를 둘러싼 팩트와 주장들을 정리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벌칸(Vulcan). 아마존이 올해 물류창고 현장에 도입한 로봇의 이름입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에게서 따온 이름이에요.
벌칸의 특별한 기능은 촉각입니다. 기존의 로봇이 상품을 식별하고, 들어 올리고, 운반했다면 벌칸은 촉각 센서를 통해 상품의 질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상품 운반에 필요한 힘과 속도를 세밀하게 계산한다는 거죠.

- 벌칸은 상품을 더 섬세하게 다룰 수 있으므로 상품 손상을 줄입니다.
- 아마존 물류창고에 보관되는 다양한 상품 중 75%를 벌칸이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벌칸에는 AI 기반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움직임을 스스로 분석하고, “실수를 통해 학습”합니다.
현재 아마존은 미국 전역의 아마존 배송캠프(delivery station)들에 다양한 로봇을 도입하고 있으며,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의 경우에도 서서히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동화로 더 안전해진다?
먼저 아마존의 물류창고 자동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주장들은 이렇습니다.
- 벌칸 같은 첨단 로봇은 선반의 가장 높은 칸과 가장 낮은 칸에 물품을 올려놓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자주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된다.
- 로봇은 힘든 작업과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고 부상 가능성을 줄여준다. 따라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 물류창고는 더 안전해진다.
- 로봇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물류창고 노동은 더 효율적이 된다.
-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서 물류 처리 속도는 높아진다.
- 아마존의 로봇은 단순히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자와 함께 일하며 업무 흐름을 가속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교육을 통해 고숙련 직무로 전환될 수 있다.
노동 강도를 높이지 않고 인간을 편하게 해주면서 효율성은 높아진다니! 기술 유토피아가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존의 공식 입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특히 아마존은 ‘로봇 도입으로 물류창고가 더 안전해진다’는 점을 강조하죠.
이런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에 부합할 겁니다. 벌칸 같은 로봇은 특정 유형의 반복적인 작업을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자동화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험은 아마존의 홍보 문구와 많이 다르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경험은…
뉴욕 퀸즈의 마스페스에 위치한 아마존 배송센터 DBK4는 물류 자동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루에 6만~10만 개의 택배를 처리하는 이곳에서는 원래 ‘피커(picker)’와 ‘스토어(stower)’라는 두 종류의 인력이 택배를 분류하고 선반에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ADTA(Auto Divert to Aisle)라는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컨베이어벨트의 80%가 자동화되었습니다. 자동 컨베이어벨트가 피커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 결과 피커들은 대부분 스토어로 재배치되었습니다.
DBK4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앨빈 게인(Alvine Gaine)이 전하는 현장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의 노동 미디어 프로젝트인 <레이버노트>에 게시된 내용을 정리했어요)
- 로봇은 부피가 작고 가벼운 상품만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큰 택배 상자는 여전히 인간 노동자가 들어서 운반해야 한다.
- 새로운 자동화 벨트에 올라갈 택배 상자들을 제대로 줄 세우려면 반드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적어도 지금은).
- ADTA는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택배 상자들을 밀어낸다. 그래서 기계가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인간(스토어)이 ADTA의 비인간적 지시에 맞춰야 하는 실정이다.
- DBK4 센터에서는 이전보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
- 빠르게 쏟아지는 택배 상자에 노동자가 걸려 넘어질 위험이 생겼다.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 산더미처럼 쌓인 상자들이 다 없어질 때까지 기계는 날카로운 경보음을 계속 울린다. 노동자가 숨 돌릴 틈이 없다.
- 작업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원래는 역할마다 노동자가 주로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데, 일부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노동자들은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었다. 반복사용긴장성손상증후군(repetitive stress injury)의 증가가 예상된다.
- 현장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 아마존이 운영하는 ‘직원의 소리(Voice of the Associate)’라는 화이트보드 게시판에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많이 올라온다.
인력은 줄어들고, 작업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고, 기계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증언들.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자동화가 물류창고를 더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든다는 아마존의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앨빈을 비롯한 현장 노동자들은 자동화 설비와 로봇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앨빈의 증언에 따르면 자동화 이후의 새로운 부담을 참다 못한 현장 노동자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일하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울리는 경보음을 듣지 않으려고 거의 모두 헤드폰을 착용한다고 합니다.
자동화의 실제 수준과 한계
“저는 100퍼센트 자동화를 믿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응용과학 책임자 아론 파니스(Aaron Parness)가 CNBC 인터뷰에서 실제로 했던 말입니다. 물류 노동에서 인간의 역할이 필수적이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자동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또한 파니스는 로봇과 인간이 각자 따로 일하는 것보다 로봇이 인간의 옆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벌칸은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과제를 만나면 인간에게 알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HR다이제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따르면 현재까지 아마존의 물류창고 로봇은 “인간 노동을 실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적 추가 장비(experimental addition)”에 더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물류창고 자동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류창고에 로봇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기 전에 기업들이 고려할 다른 사항들도 있습니다.
- 이 로봇들은 고장 나지 않고 얼마나 오래 작동 가능한가?
- 얼마나 자주 수리 또는 교체가 필요한가?
-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서 결국 손해가 될 가능성은 없는가?
- 새로운 과업을 지시하기 위해 프로그래밍할 때마다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 로봇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서 소송 확률이 높아진다면?
로봇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기간에도 비용이 듭니다. 비용 면에서 효율이 높아지려면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로봇이 물류창고 노동자를 대체하게 될까요?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물류창고에서는 완전한 전환은 아직 멀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봇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수리, 감독 등에 인간의 개입은 항상 필요하고요.
아마존과 다른 물류 또는 이커머스 기업들의 격차도 고려해야 합니다. 아마존의 경우 계속 자금을 투자하면서 로봇을 물류창고에 최적화할 여력이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그렇게 신속한 자동화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은 로봇이 물류창고의 중심이 되기보다 주변부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노동자를 ‘대체’하려는 아마존
지난 5월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단독 입수한 아마존 내부 문건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아마존은 로봇을 도입하면서 “상당수 노동자를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마존의 내부 문건에는 벌칸과 같은 로봇들이 “향후 10년 동안 아마존의 채용 곡선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존이 겉으로는 로봇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의 인력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아마존이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봇 도입에는 연봉, 유급휴가, 상여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일반적인 노동자 고용에 드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로봇은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고 노동조합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로봇을 감독할 인사팀도 필요 없고 기술자 몇 명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 전 아마존 CEO인 앤디 재시는 공개적으로 “AI 도구와 에이전트의 성능이 향상되면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어떤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의 수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죠. 아마존과 같은 개별 기업들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이윤입니다. 법적·제도적 개입이 없다면 이윤을 늘리기 위한 인력 감축은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추진될 것입니다.
🤔 the삶의 생각
- 아마존의 로봇 투자는 노동자를 위한 혁신이라기보다 생산성 증대와 인건비 절감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물류센터의 자동화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아직 노동자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런 내용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the삶이 들은 내용과도 일치해요. 자동화에 대한 과대포장이나 환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아마존 물류센터의 노동이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 자동화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자동화가 이뤄지느냐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자동화를 둘러싼 논의에 노동자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