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캠프에서 일하며 생각했던 것들
33레터가 그동안 쿠팡 문제를 여러 번 다뤘는데, 오늘은 더 생생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특별한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일상이 전쟁통인 쿠팡 물류센터에서 ‘소분 노동자’로 살기>라는 논문을 쓰신 조혜진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전쟁통 #고정일용직 #본업과부업 #자동화 #야간노동 #일자리 #청년 #사회안전망
1. 언제, 어디서 일하셨나요?
“안되면 쿠팡 가서 먹고 살지 뭐” 직장인 시절, 사표를 던지고 싶을 때마다 동료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무직에서 일하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서류를 작성하고 상사의 결재를 받아야 하잖아요. 몸을 써서 일한다면 육체적으로는 피곤할지언정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덜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농담이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정말로 직장을 그만두고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주경야독하는 입장이 되었어요. 아니, 야간노동을 했으니까 실제로는 야경주독이네요.
처음에는 쿠팡 주간조, 마켓컬리, 배민B마트 등 집주변 일용직을 탐색하다가 쿠팡 캠프에 정착했습니다. 2022년 12월 말부터 2023년 2월까지 두 달 동안 매번 출근 신청을 하는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3월 말부터는 2주마다 근무 일정을 제출하는 고정 근무 일용직으로 일했어요.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조장 역할을 맡아 총 1년 6개월 가량 소분 업무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근무지를 옮겨서 풀필먼트센터인 부천1센터, 신선센터인 부천2센터, 판매자로켓 출고를 담당하는 밀크런 인천 캠프까지 한 6~7개월 더 일했습니다. 총 기간은 2년 2개월 정도 되는 것 같아요.
2. 배송캠프는 어떤 곳인가요?
쿠팡 풀필먼트센터(CFS가 운영)는 주문이 들어온 상품들을 피킹해서 각 지역의 캠프로 보내는 역할을 하죠. 제가 주로 일했던 '캠프'(CLS가 운영)는 풀필먼트에서 출고된 상품들을 각 배송지로 전달하기 위한 소분류 작업 등을 담당하는 곳이에요.
쿠팡 물류센터는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24시간 돌아갑니다. 물류센터 건물에 들어서면 모든 게 엄청나게 크고 다 획일적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워요. 처음 갔을 때 저도 30분이나 헤맸어요.
제가 일했던 쿠팡 물류센터를 O캠프(정식 명칭은 O 서브허브)라고 할게요. 작업 현장의 문을 여는 순간 거대한 오토 소터의 ‘우웅~’하는 기계음과 철제 롤테이너, 물류 적재용 파레트, 전동 자키 등이 서로 부딪히는 소음이 밀려와요. 땀 냄새도 나고요. 사람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수많은 택배 차량과 끝없는 레일이 보여요.
저는 PB봉투에 담긴 택배 바코드를 찍어서 번호별로 분류하는 토트존에서 주로 일했어요. 토트존 안에도 파레트 무버, 스캔, 스윙, 소분류 등 다양한 업무가 있습니다.

3. ‘전쟁통’과 ‘살아남기’라는 살벌한 표현을 논문 제목에 쓰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새벽배송을 보내기 위한 쿠팡 캠프는 그야말로 전쟁통이니까요. 근무시간 중 두 번의 마감을 치기 위해서 캠프에서는 세상 큰일이 난 것처럼 일을 몰아칩니다. ‘스캔은 1초에 1개씩 찍어라’, ‘하차 속도 더 빨리 해라’, ‘소분류 버텨라’ 이렇게 관리자들의 주문이 끊임없이 방송됩니다. 관리자는 소터 2층에 올라가서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조장에게 무전 또는 마이크로 업무를 지시합니다. 그러면 조장은 행동 교정이 필요한 헬퍼에게 가서 압박을 해요. 공정 사이를 이동할 때도 ‘걷지 말고 뛰라’고 방송해서 사람들을 단 1초라도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휴게시간은… 생각조차 안 해요. 물건이 잠깐 내려오지 않는 틈에 힘들어서 걸터앉아 있거나, 옆에서 일하는 동료와 잠깐 농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지적 대상이 됩니다. 아주 친절한 관리자라면 ‘쉬지 말고 뭐라도 하세요’라고 얘기하고요, 못된 관리자는 아무 때나 고성을 질러대요. 처음 온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중간에 포기하고 집에 가기도 합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겐 어디가 아픈 건 그냥 일상이에요. 타박상도 일상. 플라스틱 토트박스나 철제 구조물에 부딪치고, 긁히고, 찔려요. 전동 자키나 팔레트에 발이 깔리면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온열질환이 심각하고요. 여성 헬퍼들은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맞이한 날이 말도 못하게 힘들죠.
4. 쿠팡 캠프에도 자동화 설비가 들어와 있다고 알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이 있나요?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나요?
제가 일했던 O캠프는 쿠팡이 개발한 자동화 기술인 ‘오토 소터(Auto sorter)’를 중심으로 소분 업무를 진행했어요. 오토 소터란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가는 상품의 운송장에 있는 바코드를 인식하여 해당 번호대의 라인으로 보내는 자동화 설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업 속도가 소터와 레일(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진다는 겁니다. 사람은 지치면 움직이는 속도가 떨어지지만 기계는 그렇지 않잖아요. 헬퍼들이 지치건 말건 소터에서 각 라인으로 물건을 내보내는 속도는 일정하기 때문에, 만약 라인에서 레일 속도를 늦춘다면 물건이 밀려서 전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헬퍼들은 자신이 레일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또 하나, 소터를 중심으로 한 작업 방식은 노동자들의 사이를 갈라놓았어요. 끊임없이 돌아가는 레일에 물건을 쉬지 않고 올려야 하니까요. 소터가 들어오기 전에는 대화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그나마 업무의 긴장감을 낮췄다면, 소터가 생긴 이후로는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작업에만 열중해야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결국 이러한 작업 방식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기계의 부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건너편으로 그러면 이쪽 물건을 내가 좀 밀어줘야 될 때도 있지. (중략)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서로 뭐 소통이 좀 더 잘 되지. 근데 지금은 말 한마디 할 시간이 없잖아. 지금 이 CLS 오토소터에서는 말 한마디 할 시간이 없어.” - 알렉스(O캠프에서 5년 이상 근무한 남성)

5. 쿠팡 캠프에 ‘고정’ 일용직이 있다는데 어떤 건가요? 이런 방식의 노무관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쿠팡 물류센터의 소분류 담당 노동자들을 ‘헬퍼’라고 불러요. ‘신규’ 헬퍼로 근무해보고 장기적으로 근무하기를 원한다면 ‘고정’을 신청할 수 있어요.
물량 목표치를 맞춰야 하는 관리자의 입장에서, 매일 처음 오는 사람들만 있다면 업무 교육과 훈련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잖아요. 1분, 30초 단위로도 마감이 갈리는데요. 그래서 일용직 노동자들 중에서 일을 잘하고, 장기적으로 일하려는 사람들을 별도로 모아 관리하는 것입니다. 고정 헬퍼는 2주마다 근무 일정을 제출합니다. 카카오톡 비밀 오픈채팅방에 초대되어 매일 근무 시작 전에 업무배치표를 받아요. 자기 업무와 위치를 확인하고 오늘의 물량 목표치가 얼마인지도 확인한 다음, 신규 헬퍼들보다 일찍 현장에 가서 업무 준비를 합니다. 단순 분류업무지만 이미 ‘숙련’의 개념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요.
캠프 전체 TO의 10% 정도는 ‘헬퍼 조장’ 직급이 있습니다. 헬퍼들 중에 경력과 업무 숙련도가 일정 정도 이상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해당 구역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기는 거죠. 그런데 이 조장들도 ‘고정 일용직’입니다. 헬퍼들보다 시급 몇백원을 더 받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쿠팡 캠프는 극소수의 계약직 관리자, 10% 정도의 일용직 중간관리자, 나머지 80~90%의 일용직 고정 인원들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캠프 일이 과연 아르바이트일까요? 구조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쿠팡 캠프는 언제나 고정 물량이 있고, 시기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일정 규모의 물량은 언제나 유지됩니다. 결국 캠프 운영을 위해서는 고정적인 인원이 필요해요. 사실상 ‘소분류’라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어야 하는데, 인건비를 낮추고 물류센터 경영을 유연화하기 위해 일용직으로 고용하는 것이죠.
6. 노동자 개개인의 성장이라든가 조직문화라는 관점에서 쿠팡 캠프 일자리를 평가한다면요?
쿠팡 물류센터에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가지고 들어오는 노동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직업을 선택할 때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일이나 미래에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일을 고르잖아요. 그러나 물류센터는 아무리 오래 해도 일당 이상의 급여를 기대할 수 없고, 복지혜택이나 교육 기회도 누릴 수 없어요. 기업 차원에서 노동자에게 투자하지 않으니 쿠팡 캠프는 언제나 단기적인 아르바이트 일자리로 받아들여지는 거겠죠. 길게 봤을 때는 노동력 수급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자 입장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자리니까요.
이런 식으로 조직된 곳의 내부 문화가 구성원에게 친절할 리가 없습니다. 캠프에서 만난 동료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여긴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쓰다가 고장나면 갈아끼우는 부품 정도로 취급한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마인드’.
쿠팡은 청년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홍보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갓 수능시험을 치렀거나 대학교 방학 기간에 캠프에 일하러 오는 젊은 청년들을 보면 가장 안타까웠어요. 이 친구들이 첫 사회 경험을 쿠팡에서 하고 사회가 다 이렇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사람들이 일상적인 노동에서 쉬는 시간 1분도 없이 극한의 고통에 몰리고, 서로 억압하고 감시하며, 수시로 싸움이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문화가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봐 많이 걱정이 되었어요.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용직으로 처음 출근하면 ‘남/녀’로 나뉘어 업무 배치를 받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업무가 편하고 쉽다는 인식 때문에 더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못하면 하차/라인으로 보내버릴 거예요’ ‘하차/라인에서 저렇게 힘들게 하는데 스캔에서 속도 안나오면 안되요’라는 식이죠. 이렇게 남성 업무와 비교하면서 여성 노동자의 작업 속도를 통제합니다.

7. 1년 6개월 넘게 캠프에서 일하시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논문에 많이 쓰셨어요. 물류센터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특징이 있다면요?
다른 회사생활이나 직장 관계와 다르지 않지만, 물류센터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감정이든 좀 진하게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작은 알사탕 하나에도 너무 크게 감동한다던가, 내 이름을 궁금해하거나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인되는 그런 느낌이요. 사실 나도, 동료도 다들 임시 일자리를 찾아온 거니까 오늘 만났다가 내일부터 갑자기 못 만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가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다니는 사람들과 형성되는 끈끈한 동질감과 공감의식이 있습니다.
저도 이것 때문에 캠프 일에 과몰입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랑도 대화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물류센터 밖에서 원래의 나는 엄청 사교적이고 사람에게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요, 물류센터에 오면 일부러 내 정체성을 감추고 사람들과 인사도 거의 안 했어요. 그런데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과 서로 통성명하며 존재를 확인하고, 실수에 폭소하고, 힘들 때 도와주고, 성취에 함께 기뻐할 관계가 필요하더라고요. 역설적이게도 캠프 일을 하면서 관계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몸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8. 사람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쿠팡 캠프 내부에서 일을 해보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고 불합리도 느낄 텐데 사람들이 캠프 일을 계속했잖아요. 그분들에게 쿠팡 캠프 일자리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일을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겠죠. 제 경우에도 학업과 병행 가능하면서 1인 가구의 생계비를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쿠팡밖에는 없었어요. 그렇다면 정규직으로 취업해서 돈을 벌면 되지, 왜 불안한 일용직 노동을 해야 하느냐고요? 그리고 왜 쿠팡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있어요. 그분들이 ‘쿠팡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죠. 본업에서 수입이 불안정해서 남는 시간에 부가적인 임금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육아나 학업 등 일은 하지만 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 자녀가 성장하면서 학원비 등 고정지출이 늘어나는 사람들. 대부분 ‘부업’으로 생각하고 들어오죠. 쿠팡 물류센터의 임금만으로 여유 있게 생활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여기 쿠팡 1W 근무자들 중에는 남자분들 중에, 여자, 남자분들 거의 70~80%는 겸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을 나오냐 다섯 번을 나오냐 한 번을 짜냐 그 차이인데… - 알렉스(O캠프에서 5년 이상 근무한 남성)
그럼요. 생활비죠. 애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드니까. (...) 아기 분유값이라도 벌려고 나온 거죠. - 스칼렛(O캠프에서 2023년부터 1년6개월 정도 근무한 여성)
쿠팡 물류센터의 출근 시간도 N잡러들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O캠프의 경우 주간조(10:00~14:30)에는 주로 자녀를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에 보내놓고 하원하기 전까지 일하려는 주부들이 많아요. 야간조(18:00~익일 01:30)와 심야조(01:30~09:00)는 비교적 자녀들이 커서 밤 근무가 가능한 분들이나 낮에 본업을 하고 오는 분들이 많고요. 고정 근무자가 되면 스케줄 조정이 쉽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요.
제일 큰 게 그거죠. 내가 원할 때 나와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그걸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 (중략)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인데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고 오로지 남편과 제 힘으로 이제 육아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거를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돈을 벌고 싶다…. - 도나(O캠프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한 여성)


9. 야간노동을 지속하는 노동자들의 몸 상태를 증언하신 부분이…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요. 경종을 울리기 위해,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다른 물류센터 일용직을 갔다가 쿠팡 캠프에 정착한 이유가 바로 야간노동 때문이었어요. 밤에 일해야 하는데 일이 너무 쉬우면 졸려서 못 버티겠더라고요. 차라리 정신없이 몰아치면 버티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시간이 후루룩 가버리니까요. 그렇게 캠프에 정착한지 3개월 만에 체중이 16kg 줄었어요.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너무 커져서 흘러내리고, 속옷도 새로 사야 할 정도였어요. 하차나 라인 공정에서는 30kg 빠지는 것도 기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분들이 나중에는 그냥 앉아 있다 쓰러지거나 일상생활이 힘들어서 캠프 일 또는 본업을 그만두기도 했어요.
저는 야간노동을 주5~6회 정도 1년 반 동안 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에요. 저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갑자기 아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일용직의 불안정한 일상을 버티려면 아파도 아프지 않아야 했어요. 그렇게 일하고 새벽에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밤 혹사시켰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서 손이 오므려지지 않았습니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도 저도, 손이 아파서 플라스틱 병뚜껑을 제손으로 못 땄어요.
저는 주5일보다 주6일 일하는 편이 쉬웠어요. 왜냐고요? 쉬는 날이 지속되면 그동안 쌓인 피로와 통증이 밀려오거든요. 다시 일하러 나가기 무서울 정도였어요. 캠프 노동자들은 보통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정산한 후 한두달 쉬었다 다시 일하는데요, 일을 쉬기 시작하면 일주일 동안 몸을 전혀 못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동안 쌩으로 버텨왔던 허리, 어깨, 손, 발목 등의 고통과 각종 면역질환이 몰려와서 꼼짝도 못하게 되는 거예요. 역설적이게도 고강도 야간노동의 영향은 현재 시점보다 나중에 더 많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10. 한국의 노동시장 현실에서 쿠팡 물류센터 일자리는 괜찮은 편이다, 아니다를 두고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그 정도의 일자리에 만족해야 할까요?
개인적인 경험상 쿠팡 물류센터가 없었다면 저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규제를 피해서 만들어진 일자리 덕분에 저의 과도기적인 시기를 그나마 버틴 거죠. 그런데 저의 경우 그렇게 살았을 때 하루 노동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쿠팡 일 외에도 학업, 지역 프로젝트 등을 병행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진로 탐색을 이어갔거든요. 집에서 잠자는 시간은 4~5시간 정도였고 나머지는 계속 바깥에서 노동과 이동으로 보냈으니 삶 자체가 불안정했죠. 이건 부실한 사회안전망과도 관련이 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재교육이나 자아 탐색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 기간의 생활이 오로지 노동자 본인과 가족의 자본으로만 유지되어야 하니 결국 쿠팡 일과 병행해야 했던 것입니다.(물론 그 덕에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요)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 일을 나의 직업으로 가진다고 했을 때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신체적으로 너무 빨리 지치고, 경력에 따른 보상도 없고, 특히 야간 일을 하면 물류센터 동료 외에 가족, 친구 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해지니까요. 나의 삶을 살고 싶어서 일을 하는 건데 내 삶을 챙기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쿠팡이 자사에 이윤을 가져다주는 노동자를 그 가치만큼 대우하고 편의와 복지를 제공해서 함께 사는 일터를 만든다면, 그때는 좋은 일자리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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